아르누보는 19세기 후반 예술과 공예 운동에서 발달한 예술 및 디자인 운동이다. 이 운동의 예술가들은 식물의 줄기와 꽃의 자연스러운 형태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전개했다.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예술로 표현했고, 곡선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이 운동은 그림과 조각과 같은 소위 교양 예술을 공예 기반의 장식 예술보다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았던 전통을 폐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운동 스타일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행이 끝나지만 1920년대에 이르러 아르데코로 진화한다.
시작
아르누보(Art Nouveau)는 문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이 운동은 두 가지 이유로 출현하게 된다. 첫 번째는 1880년경 영국 예술 및 공예 운동의 도입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어수선한 장식 디자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난 영국 공예 운동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는 일본 예술, 특히 목판 인쇄술의 유행이다.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구스타프 클림트, 에밀 갈레, 맥닐 휘슬러와 같은 많은 유럽 예술가가 이에 매료됐는데, 일본의 목판 인쇄술의 꽃무늬, 구근 모양, 곡선 등은 이 운동의 핵심 요소를 형성하게 된다.
어떤 작품이 이 운동의 첫 번째 작품인지 공식화하기는 어렵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곡선과 꽃 배경이 아르누보의 탄생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의 ‘물랑루즈:라 굴루(1891)’의 장식 석판화를 이 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시각 예술의 아르누보
스코틀랜드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의 아이디어는 아르누보 시각 예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는 구불구불한 식물의 줄기를 나타내는 추상 패턴을 작품의 배경으로 차용했다. 일러스트레이터 Aubrey Beardsley는 영국의 유명한 ‘황색 잡지’의 디자인 편집자로 일하면서 이 운동의스타일로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대중 매체의 포스터는 아르누보를 전파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체코의 유명 예술가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는 포스터에 매력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그려내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인기 연예인이 Sarah Bernhardt를 위해 제작된 포스터 ‘Gismonda(1894)’는 그에게 큰 성공을 안겨줬다.
디자인의 아르누보
아르누보의 조각 예술가는 ‘조각가’라는 말보다 ‘오브제 디자이너’란 말이 더 어울리다. ‘오브제 디자이너’로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다. 그는 주로 부유한 고객들을 위한 장신구를 만들었다.
티파니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제품은 스테인드 글라스다. 티파니 램프 디자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파티는 주얼리, 상자, 시계, 도자기 디자인으로도 유명세를 탄다. 1888년부터 1909년까지 티파니에서 근무한 클라라 드리스콜(Clara Driscoll)은 티파니의 램프와 수많은 유명 아이템을 디자인했다.
에멜리 갈레는 프랑스의 꽃병 제작자였는데, 가구 디자인, 주얼리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르누보의 거장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루이 마조렐과 함께 고향인 프랑스 낭시에서 ‘에콜 드 낭시’를 조직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예술계에서 힘을 잃은 이 운동의 자리는 모더니스트 운동, 특히 아르데코가 차지하게 된다.
주요 작품
1. 물랑루즈:라 굴뤼(1891),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은 아르누보의 핵심 그래픽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1890년대에 포스터를 단발성 광고 전단에서 고급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물랑루즈:라 굴뤼’는 프랑스 캉캉 문화의 화려함을 표현하고 있다. 댄서의 드레스를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나누어 움직임과 공간감을 동시에 표현한다. 색상을 평평하게 채우고 형태를 단순한 윤곽선으로만 표현해 평면화하는 것은 일본 목판 예술의 영향이다. 인물과 물체의 표면을 불명료하게 그려 나이트 클럽의 조명을 표현한다. 또한 ‘물랑루즈’ 글씨를 빨간색 글자로 여러번 반복해 그려넣은 것은 ‘라 굴뤼(로트렉 친구의 예명)’와 같은 댄서들의 화려한 에너지를 표현한다.
2. 희망 II (1907),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에는 형태의 왜곡과 과장이 주로 사용된다. 클림트는 특히 1900년 이후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금박, 밝은 색조의 만화경을 작업에 많이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클림트의 시그니처 스타일은 인물의 성숙미를 표현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로 인해 그의 많은 작품들은 몽환적이고 시각적으로 아름다우며 물질적으로는 고급스러운 그림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1907년 작품 ‘희망II’은 인물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인체를 초현실적으로 과장한 인물의 이미지는 배경의 반복되는 패턴과 분리돼있는데, 이는 클림트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데 집중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비엔나 분리파’의 창립 멤버였던 클림트는 과거 회화의 학문적 교리를 거부했다. 클림트의 작품이 예술계에 일으킨 반향은 어마어마했고,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가장 혁신적인 아르누보 화가이자 모더니즘의 대가로 칭송받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
아르누보의 유행은 길지 않았지만, 이 운동은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곡선이 자유롭게 흐르고 이미지의 표현이 통제되지 않은 이 운동의 특성은 피터 맥스(Peter Max)와 같은 포스트 모더니스트 예술가에게 영감이 되었다. 피터 맥스의 작품은 관객들로 하여금 몽환적이고 환각적인 경험을 불러일으켜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늘날의 아르누보는 모더니즘 발전의 중요 단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 자체가 특정 시대의 정신, 지적 사고의 표현이기 때문에 예술 시대 사이의 과도기로 보기는 어렵다. 아르누보는 현대적 미학을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짧은 시기 잠깐 발현된 시각 예술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