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1970년대 등장한 문화적, 철학적, 예술적 운동이다.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다. 모더니즘은 혁신과 진보를 중요시하며 하나의 진리나 이념을 추구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인정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다양한 형식과 스타일을 모두 인정하며, 다양성과 상대성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술 운동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의’를 무시한다. 포스트모던 스타일이나 이론의 근간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960년대의 팝 아트부터 신표현주의, 페미니즘 미술, 1990년대 Young British Artist(YBA)까지 거의 모든 현대미술 포스트모더니즘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이다. 모더니즘 운동의 기반은 인간의 삶과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비전, 진보적 믿음이다. 모더니즘은 종교와 과학이 증명한 보편적 원리나 진리가 현실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은 주제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형태와 기법을 실험하며 현대 세계를 작품에 순수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이처럼 모더니즘은 이상주의와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회의주의를 기반으로 탄생했으며 이성에 대한 의심을 그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보편적 확실성이나 ‘진리’의 개념에 도전했다. 포스트 모던 예술은 개인의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이 추상적 원리나 진리보다 더 현실적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모더니스트들이 명확성과 단순성을 추구했지만,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복잡하고 모순된 의미의 층위를 수용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얼굴
포스트모더니즘은 본질적으로 반권위주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하기를 거부했고, 전통 예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예술과 일상생활의 경계를 허물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예술 스타일에 전통적으로 확립된 일종의 규칙을 깨뜨렸다. ‘어떠하든, 무엇이든 가능하다’라는 새로운 감각을 예술에 도입한 것이다. 그래서 종종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웃기거나, 농담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히 개인의 경험과 자기 인식에 기반한 예술적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과거의 다양한 예술적 스타일을 차용한 작품이 선보여지기도 한다.
주요 작품
1. 매릴린 딥티치, 앤디워홀
20세기 유명 연예인 매릴린 먼로의 실크 스크린 프린트 작품이다. 영화 ‘나이아가라’에 등장하는 매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색채와 흑백으로 재현했다. 1962년 매릴린 먼로가 사망한 지 몇 달 후 만들어진 이 작품은 앤디 워홀의 대표작 중 하나다. 당시 그는 유명인 숭배와 죽음 그 자체에 매료돼 있었다. 작품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희미해지는 단색과 대비되는 색상은 삶과 죽음을 암시하고 있고, 그녀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미디어 속 어디에나 매릴린 먼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여러 의미에서 포스트 모던의 대표 작품으로 여겨진다. 대중문화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모더니즘 미학의 순수성에 도전한다. 또 이미지의 반복은 산업사회의 대량 생산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또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 제단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양면화’ 형식을 차용해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표현한다. 앤디 워홀이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모든 것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사이의 전통적 경계에 대한 도전이다.
2.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바바라 크루거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스타일의 특징은 도발적인 슬로건과 사진을 함께 제시하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직접적인 스타일과 형식을 차용하여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 이미지와 관객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빨간색, 검은색, 흰색 등의 뚜렷한 색상 대비는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슬로건은 철학자 데카르트의 명언을 인용한 것으로, 이를 통해 작가는 소비주의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3. 사과나무, 게르하르트 리히터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는 몸짓, 회화, 조각, 사진 콜라주 및 기타 다양한 미디어를 실험하는 것으로 유명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다. 리히터는 무엇을 그릴지 결정하는데 힘을 쏟지 않았다.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문이나 미디어에서 주제를 차용했다. ‘사과나무’에서 리히터는 독일 낭만주의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전통적인 풍경을 만들어냈으나, 이 풍경의 정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도록 이미지를 흐리게 구성하여 작가의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그는 이러한 기법은 작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미술적 기법이라는 것이다.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최근 예술계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진입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부 평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스타일이라고 말하며, 피상성, 냉소주의, 허무주의 등을 기반으로 하는 이 운동의 기조에 의문을 표한다. 어떤 사람들은 모더니즘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독스(Edward Docx)는 포스트 포스트 모던 시대를 스타일과 컨셉에 대한 진정성, 그리고 장인정신의 부활을 표방하는 ‘진정성의 시대’라고 칭한다. 이를 부르는 다른 이름으로는 ‘논스톱 커뮤니케이션 및 세계화’ 문화를 뜻하는 ‘alter modernism’, 그리고 앨런 커비(Alan Kirby)가 만든 ‘pseudo modernism 있다. 앨런 커비는 리얼리티 TV쇼를 시청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언급하며 예술을 향유하는 관객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수동적 관람에서 적극적 참여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같이 포스트 모던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을 주창하는 이들은 진실과 진정성으로의 회귀를 갈망한다.